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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20140612 난감함, 절연

 

 

 

 

난감함

 

어차피 페북은 뭐 버리는 셈 치고 하고싶은 말 다 배설하려고 다시 건드리게 된 블로그이다보니, 여길 아는 지인이 딱 3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할 말은 많은데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절연

 

전기가 끊기는 현상.

 

은 회이크고(왜이래...), 인연을 끊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잔정이 많은 건지, 그저 과거에 대한 미련이 많은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떤 인간관계든지, 어느 정도 이상의 친밀감과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과 어떤 일로 트러블을 겪었다 해서 인연을 끊는게(그정도는 아니더라도 더이상 서로 의미있고 친밀한 사이가 아니게 되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그게 쉽지 않은게 나 뿐만은 아니겠지만.

 

난 성질이 좀 심하게 급하다. 트러블이 생기면 대체로 잘잘못을 따지는 계산을 하기 마련이지만, 그게 관계의 지속을 위협할 정도의 수준이 되면 더이상 그 계산을 할 수가 없다.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 나면 종목(?)을 바꾸어서, 잘잘못은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된다. 이 사태를 무사히 수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며, 빨리 이 멀어져가는 내 사람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하고, 그리고 그 제대로된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조바심에 성급하게 뭐든 실행에 옮기려 한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내가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갈등 상황 자체에 대해 사과를 하거나, 쉽게 용서해 버리기도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경우, 일단 용서하는 척 해놓고 이 관계를 다시 바로 잡은 후에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했던 건 아니지만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건 나중에 관계를 바로 잡은 후에 '에라이. 쌍쌍바야. 그때 사실 그건 내가 사과받았어야 했지.'라고 반 농담조로 웃으면서 넘어가도 충분한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쉽게 용서해버리는 것.

난 이 말을 대체 앞으로도 몇번이나 울궈먹으려나 모르겠는데

 

내게 잘못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도

나를 용서한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

 

라는 이 인간관계의 지침서 같은 말이 대변해주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난 후, 실제로 그런 순간들 속에서 증거를 자꾸만 발견하게 된다. 되려 급한 내 용서(사실 누가 감히 누구의 죄를 사한다고 까부는 건가 싶어서 용서라는 단어를 쓰기도 거북하지만 다른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화해와 용서의 중간 정도 성격인 것 같다.)가 그 사람들을 때때로 불편하고 거북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거였다. 시간의 순기능 중 하나는 나쁜 기억들을 희석시킨다는 데에 있는데, 나는 나 자신에 비하면 훨씬 압도적으로 강한 그 시간의 힘에 기댈만큼 여유롭지 못한 나머지, 내 힘으로 그것을 대체하고자 말도 안되는 시도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런 잘잘못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그저 계속 잘 지내고 싶으니 없었던 일로 치자. 난 괜찮다.

 

이런 얘길 몇번이고 남발했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내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좋지 못했다. 당시에는 거기까지 살필 겨를이 없었지만 이게 얼마나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짓인지 이해하질 못했다. 그냥 입 다물고 시간에 기대면서 때때로 미워하는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음을, 여전히 호의적임을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조금씩 보여주기만 했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지. 이 조급증은 거의 병에 가까운 것 같다.

 

막상 이렇기는 했어도 그래도 살면서 꽤나 관계의 위기를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조급한 용서(화해)의 시도 후에 이어지는 불편함과 뻘쭘함이 자연스러움으로, 충분히 시간을 통해 숙성된 후에는 행여나 잘못될까봐 미리 전제해 두었던 호의 덕분에 곧 회복되는 편이었다.

 

 

 

 

그지같이 서론이 존니스트 길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결국 어떤 말을 주절대고 싶었던 거냐면, 이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 스스로 관계를 끊게 되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대한 얘기인데 여태껏 살면서 딱 세번 있었다.

 

첫번째는 철딱서니 없고 허세-나=0 였던 꼬꼬마때 분노를 이기지 못해 그냥 한큐에 요단강 건너가버린 친구와의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항상 손톱밑의 가시처럼 불편하기만 한게, 나는 그 때 내 행동에 대해 전혀 책임감같은 걸 느끼지 못했고 바로잡고자 하는 친구의 노력에도 전혀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을만큼 어렸고 그래서 역시 어렸던 그 애의 실수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버렸다. 어려서 어리석은건지, 어리석으니까 어린건지. 하여간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 잘못이 더 크다.

 

두번째도 마찬가지로 분노를 넘어 거의 증오에 가까운 마음 때문이었는데, 이건 내 지인이 세상을 등진 그 주의 금요일에 생긴 일이었다. 정작 도왔어야 할 절박하고 진지하고 적어도 내게 진심이었던 사람을 외면한 주제에 쓰잘데기 없는 장난질 속에 난 밀어넣은 혐오스러운 관계에만 집착하던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져서 마침내 정신을 차린 셈이었다. 뭐.

 

세번째는 불과 4달전 일이고 특히나 더 예외적인 상황이었는데 왜냐면 그 때 나는 그 이전의 두 경우처럼 감정에 휩쓸린 상태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 트러블이 생긴 직후에는 이런 말이 나올 뻔 했다. 널 당장 찢어 죽여놓고 싶다. 라고. 솔직히 말하면 그 애는 나보다도 감정 컨트롤이 서툴러보여서 그런식으로 자극했다가는 없는 헛소리를 지어내서라도 날 더 곤란하게 만들기 충분할 것 같았기 때문에 나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살살 달래는 쪽을 선택했다.

 

너도 살면서 그런 일을 겪어봤을 텐데 내 기분 알거 아냐.

 

그랬지만 돌아오는 말은, 너 오바한다, 난 널 위해서 그런거였다, 실망했다, 나 잔다, 였고 그 후 대답이 없었다. 하루 반이, 그러니까 밤을 기준으로 하면 이틀 후에 그 애에게 너랑은 친구로 지낼 수 없다고 했는데, 그때는 감정적이지 않은 상태였다. 거꾸로 얘기하자면 화를 가라앉히고 이성을 찾아 좀 더 모든게 명백해지는 데에 온 신경을 쏟았는데도 하루 반씩이나 걸린 거였다.

 

이미 화가 가라앉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와 도저히 친구로 지낼 수가 없었는데, 그건 내가 그 애를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떄문이었다. 친구가 아니라 부모님이라도 개입해선 안되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그 영역을 침범었다. 심지어 내가 원치 않는 방향이라서 그 일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뜯어 말린 일이었다. 나중에 훨씬 더 지나고 나서 그 일이 내게 차지하는 중요도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누군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에 끼어들어 월권을 행사하는 건 화가 나는 걸 넘어서서 되려 실감이 나지 않을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그 때 나는 멍청한 표정을 하고 '이거 거짓말인거지?' 라고 말했었으니까.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그 이후에 내게 닥칠 일들에 대해 책임질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들로 하루 반을 보낸 후 마침내 진정이 되었을 때 그 애에게, 너와는 친구로 지낼 수 없겠다, 네가 언제 내 인생에 또 끼어들어서 이런식으로 날 망칠지 모르겠다, 하는 얘길 하고 몇마디 섭섭하다느니, 넌 친구관계가 이따위냐느니 하는 원망과 비난을 듣고 그냥 그러라고, 그렇다고 인정해 버리고. 그렇게 끝났다. 여기에 대해서 내가 이성적이었다고 확언할 수 있는게, 한달반 쯤 전에 느닷없이 연락이 와서 내게 섭섭하다는 말을 하는 그 애에게 나는 이전과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있었고, 술 한방울도 마시지 않은 맨정신의 상태였고, 당시의 하루 반이 지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쭉 그 애에게 전혀 화가 나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그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심한 짓에는 한계가 없기 마련이고 단지 그걸 나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냐 아니냐, 하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맨 처음에 말한 어릴때 친구를 제외하고 그 이후의 두번의 기억은 인연을 끊는다는 것에 대해,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이미 내가 전처럼 막연하지만은 않은, 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의미를 부여했을 때였는데,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절연에는 이런 의미가 가장 크게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진지하고 신중했다.

 

 

네가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더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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