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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젊은 예술가의 초상> - 제임스 조이스

 

 

 

 

 

 

 

 

아직 다시 읽을 엄두도 못내고 있는 보르헤스의 <픽션들> 다음으로 악독하게 난해한 책이었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는데 그 유명한 <율리시스>와 함께 더블린 3부작이라고 한다. 율리시스는 그 난해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데, 당분간은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지가 않다.

 

내용 자체보다는 형식면에서 꽤 흥미로웠다. 같은 내용으로 다른 작가가 독자들에게 익숙할법한 형식으로 썼다면 그저 그랬을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앞부분 3~40페이지를 읽는 동안 든 생각은, 이 극단적 이기주의자. 겁나 불친절하네, 였다.

 

3인칭 시점인데도 '그'라고 지칭한 인간이 누군지 헷갈리는 게 한두번도 아닌데다가 시간 순서가 꽤나 와리가리한데, 어디까지가 어느 시점인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 저질 기억력 가지고는 각각의 사건들을 이해하는게 꽤나 고난이도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겠고만, 하고 짜증내면서 읽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아니, 이거슨 내가 취중에 생각 가는대로 대상도 목적도 불분명하게 막 써갈기는, 밑도 끝도 없는 헛소리, 헛소리 중에서도 특히 불친절하게 남이 알아먹든 말든 쓰는 헛소리랑 왠지 좀 비슷한 스타일같기도 하고?
(물론 이 작가의 글은 내 취중 헛소리와 다르지만)

 

그래서 흔히 서사물을 읽을 때 인지하는 시간관계니, 개연성이니 하는 것들을 찾길 포기하고(왜냐면 시간 순서만 뒤죽박죽이면 참을만 하겠는데, 등장인물은 더럽게 많은 데 비해 하나같이 그 비중은 약했다.) 그냥 얘가 하는 생각들을 내 생각이다 치고 집중할 포인트를 순간순간의 사건에 대한 화자의 감정과 생각쪽으로 바꿔잡고 쭉 따라갔다. 그렇게 읽길 잘했다 싶은게, 중심 사건이 하나 있어 그것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흐름에만 집중하는게 아니라 여러 부분들을 그 중요도와 상관없이 생각나는대로 다 꺼내서 보여주는 듯 했다. 정말 존니스트 불친절하다.

 

하기사 정말로 사람의 의식을 따라간다면 중요한  것이든 안 중요한 것이든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마련일테니, 의식에 포착된 것들을 두서없이 전부 열거하듯 보여주는게 자연스럽겠지. 또 어떻게 보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절대 퇴고하지 않은 일기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중에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흐름 기법'이다. 어쨋든 단어 뜻 그대로이긴 하다.

 

당연히 어느 부분에서 시간이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거나 하면 헷갈렸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었다. 어쨋거나 그 일반적이지 않은 형식 덕분에 나 역시 여태껏 해본 적 없던 새로운 방법으로 읽었던 책이라 꽤나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이건 아무래도 한번은 더 읽어야 제대로 서사적인 의미로서의 내용을 알아먹을 것 같다.(결국 여기에 집착하는게, 아무래도 학습된 독서 습관을 버리는 건 아직 무리다.) 상황에 따른 화자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무리는 없었는데, 오히려 서사적인 맥락에서는 잘 알아먹질 못하겠는 건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용은 뭐.
성장 소설.
끝.

 

...은 농담이고 새로운 형식에 치여 정신이 없었다는 핑계도 있지만, 짧은 문장으로 내용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함축을 못하겠다. 작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정보 정도만.

 

그나저나 극 중에서 작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 스티븐의 성인 '디덜러스'는 이카루스의 아버지인 다이달로스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그건 왜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찾아보니 다이달로스는 예술가보다는 명장, 장인에 가까운 인물인데 하고 많은 모델 중 왜 다이달로스여야 했나.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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