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거의 막차 시간에 안국역에 도착하자마자 느닷없이 만감이 교차했다.
사실 그런 감상따위 가질 시간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동네..., 라며 다리다친 개새끼같이 신음섞인 한숨이나 뱉어내고 앉아있었다. 오지도 않는 마을버스를 15분이나 기다리면서 말이지.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고 여전히 지금도, 롸잇나우 시간 여유는 없으므로 찐따같고 너무도 초라했고 한없이 불편하기만한 사연 이야기는 패스.
아무런 소득없이 택시비만 버려가며 15분. 마을버스를 기다렸던 15분만큼 있다가 다시 왔다는게 중요한거고. 짜증의 원인이고. 그렇지 뭐.
멍청함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기획서를 쓰다보면 -대체로 중간 쯤 싸질러 놓은 후에나 이런 일이 생기기 마련인데- '하하. 이 기획서는 망했네요♡' 라는 느낌이 쎄-하게 척추를 타고 흐를 때가 있다. 그런데 일을 너무 오래 쉬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이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 느낌이 한결같이 지속되는 바람에 지난 3일간 '나는 멍청이인건가' 라는 생각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도저히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중간 점검차 피드백을 받으려고 PM에게 메일로 보냈다.
- 디렉션이 그지같은걸 어떡해. 그래도 로빈씨 정말 많이 해왔네. 무리하지 마. 긴장하지 말고.
다행히 이런 반응이어서 한시름 놓고, 한시름 놓자마자 언제 무슨이 있었냐는 듯이 폭풍 게으르밍 중에 경악스럽게도 원래 난 그지같은 상황일 수록 더 잘했었다는 불문율이 깨졌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아무래도 그냥 멍청한게 맞는 것 같다.
전의 제로입니다.
고자예요.
책
일을 시작하기 전 한달 반동안의 독서는 마음의 양식도, 아니고 지식 습득도 아니고
정말이지 그냥 스스로에게 가하는 정신적 폭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집요함과 광기의 배출이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시간은 남아 돌다 과열되다 끓어 넘치는 지경까지 와버려서 하루 하루 방향조차 애매모호한 분노와 살의에 휩싸여 주구장창 읽어댔다. 그 이유는 안알랴줌. 은 회이크고 실은 일은 자꾸 미뤄지고 통장이 마침내 밑바닥을 드러내는 바람에 돌아버릴 지경이었지.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런데 그런 좋지 아니한 동기에서 비롯된 '사단'이라고만 할 수 없는게 꽤나 정신적으로 신세계를 맛봤다. 몇년 전 카프카,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지 오웰을 연속으로 읽은 후 완벽하게 멘붕, '3콤보로 사망'할 지경에 이르렀던 이후로는 기분의 상태에 따라 책을 조심스럽게 고르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2월에서 3월 초 무렵까지만 해도 니네들이 열광하는 베스트 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리고 미국인이 쓴 바보 빅터같은 말랑말랑한 책들을 손에 쥐었다가, '진짜로 안알랴줌'이라는 이유로 마침내, 마침내, 마침내 손에 들었던게 시니컬한 염세주의를 표방한 중2병자들이 신명나게 인용해대는 쇼펜하우어 였다.
거기서 내가 발견한 건 어처구니 없게도 -왜냐면 차가운 촌철살인이 담겨 있을줄 알았던데 그 아저씬 생각보다 다정했다- 시니컬함도, 생에 대한 부정도, 염세도 아니고 차라리 보다 진리에 가까운 역설과 휴머니즘이었다. 책이야 읽는 사람 맘이고, 취할건 취하고 버릴건 버리는 자세로 독서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내가 믿고싶은대로 병신같이 해석을 했다 해도 달리 할말은 없고 하고싶지도 않지만.
쇼펜하우어에게 도움을 받은 건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책 고르면서 겁내는 습관이 사라졌다는 거고 그와 같은 맥락으로 -전에도 비교적 이러했던 것 같지만- 사람들이 으레 고개돌리곤 하는 불편한 진실을 거부감과 두려움 없이 담백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리고 또하나는 역설. 이 '역설'의 또다른 면을 찾음으로써 이 단어는 내게 참 귀하고 중요한 단어가 되었는데 아직 머리속에 이미지만 가지고 있어서 야근중인 -하지만 이렇게 놀고 앉아 있는- 지금 당장은 적절한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
그러니 그만 좀 쳐 놀고 일이나 하세.
변덕
이건 진짜 내가 하는 짓이지만 때려주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철야하면서 야식으로 먹으려고 사과파이를 샀는데 치즈 와퍼를 먹고 싶다.
난 치즈 와퍼를 먹을 테고 아마 사과 파이는 겉비닐을 뜯기 전에 먹지 못할 상태가 될게 분명하다.
어떻게 매번 이럴까. 으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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