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9 신분세탁, 22시간, 프리랜서
신분세탁
정확히는 경력 세탁
지금 일하는 곳의 이사가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나를 과장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곳 직원이 아닌데 어쨋든 이런저런 이유로 그 회사의 직원 역할(?)을 해야 하고 그래서 명함을 만들었는데 거기엔 또 대리라고 되어있다. 그러고보니 과거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한달짜리 알바 경력이 1년 1개월로 뻥튀기가 되었던 적이. 물론 결코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건 아니었다.
저렇게 해 놓아버리면 그 급처럼 보여야 하기때문에 피곤하다. 이 회사 이사에게 '아 솔직히 그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러지도 못했던게, 나는 지금 2중으로 어느 정도 구라를 쳐야하는 입장인게, 이 회사에 나를 넣어준 친구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건 아니지만 뉘앙스로 봐서는- 대리급과 과장급의 중간쯤으로 소개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피곤하다. 될대로 되라 하고 그냥 그 급인 것처럼 여유를 가장하며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데 언제 밑바닥이 드러날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처음부터 발을 잘못 담근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런 생각해 봤자. 그래 뭐. 될대로 되겠지.
22시간
만에 퇴근하고 정오가 지나 집에 들어와 뻗었다. 이바닥이 원래 이랬다는 것을 잠시 잊었지 뭐야. 주말을 온통 빼앗겨가며 한 일이 '아둥바둥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이 없었다. 이런 경우야 사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썩 기분 좋지 않다. 일을 하기 위해 주말을 쏟아 부은게 아니라 그저 '주말을 쏟아붓는 것'이야말로 정확히 내가 해야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한결 낫다.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일을 했다고 할게 아니라 '비효율과 불합리한 프로세스를 참는 것'이야말로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한결 낫다.
이게 무슨 지랄이냐고 이미 여러차례 툴툴거렸어야 나답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으므로.
스위치 잘 작동하고 있네.
음. 살아있어.
프리랜서
본의아니게 프리랜서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런 형태의 직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저런 이유를 자꾸 발견하다보니 프리랜서, 계약직에게 정규직보다 많은 급여를 주는 것이 -그냥 '그렇다 하더라'라는 말에 대한 수긍이 아니라- 너무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다시는 프리랜서로 사는 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결심했다.
'내가 하루에 버는게 45만원이다'라고 말했던 언니가 볼때마다 수척해지는 이유 중에는 아마 나와 같은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별로 좋지 못한 부분에서 서로 약간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그녀나 나나 프리랜서 체질은 영 아닌 것 같다.